사진 1  5 ·18광주민주화운동 추모탑
사진 2 무장항쟁군상


1980년 5월 18

5·18 민주화운동  1980년이면 아주 제가 아주 어릴때 순천에서 살고 있었고 잠깐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을 더음어 보면 광주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어렸을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전쟁이 일어난줄 알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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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네이버 자료]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全斗煥) 퇴진, 김대중(金大中) 석방 등을 요구하여 벌인 민주화운동.

발발 당시에는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되었다가 1988년 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하였고, 1988년 11월 사건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를 개최했다.

원인은 박정희(朴正熙)의 오랜 군사독재가 통치능력을 상실한 일련의 사태, 즉 1979년의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 제명파동, 같은 해 10월 16일의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 10월 26일 김재규(金載圭)에 의한 대통령 박정희 시해사건(10·26사건) 등이 초래한 국가적 위기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하극상을 통하여 군부를 장악하고 군사독재의 연장을 통하여 해결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군부세력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를 발표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 투옥하기 시작하자 광주에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과 이에 반발하는 학생 ·시민 연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5월 18일부터 시작된 시민항쟁은 시민자치와 민주주의공동체 구현 등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27일 새벽 2만 5,000명에 달하는 군을 투입한 무력진압에 정부공식 발표 사망 191명, 부상자 852명을 내고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19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들의 대미인식(對美認識) 변화와 함께 사회운동의 목표로 민족해방 ·사회주의 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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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적인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5월 18일이 가까워지면 오엠님들께서 하셨던 말씀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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