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History: A Practical Guide​(1) 정의와 역사,그리고 오늘​'Public history'가 번역된 '공공역사'란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들에 의해 확립된 역사연구의 한 영역을 칭하는 용어다. 성균관대학교 1학년 대상 교양인 '역사학입문'을 수강하며, 이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내에서는 공공역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결국 원서를 발췌독하고 직접 번역하여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혹시나 나중에 공공역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지 모르는 비전문가들을 위해 내가 번역하고 추가로 자료조사한 기록을 남겨 둔다. 참고한 책은 다음과 같음을 밝힌다: 『Public History: A Practical Guide』(Faya Sayers 저) 『What Is Public History Globally?: Working with the Past in the Present』(Paul Ashton 외 저) ​공공역사의 정의공공역사, Public history는 “역사연구기관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재현의 모든 형식” 그리고 “역사의 생산 및 실행에 있어 대중의 참여”를 뜻한다. 즉 공공역사란 전문가들의 노력만으로 확립되는 ‘위에서 아래로’의 과정이 아닌 대중이 참여하는 ‘아래에서 위로’의 과정, 즉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공공역사의 ‘공공’이라는 용어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은 최근까지 ‘역사에 관심을 갖는 아마추어’를 지칭하는 데 사용해 왔다. 그러나 ‘공공’의 알맞은 정의는 전문적인 역사연구 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대중이다. 또한 보통 지리적으로 구성된 대중, 예를 들면 ‘뉴요커’처럼 특정 지역 내에서 서로 연결된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나아가 단순히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 공동체뿐만 아니라 같은 신념과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 내 흑인) 등의 공동체까지 포함한다, Faye Sayer(페이 세이어)의 책 Public history: a practical guide에 따르면, 학계에서는 공공역사의 원어인 Public history에서 Public이 지칭하는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정의하는 것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특정 범위 내의 인구 전체’라는 의미의 Public은 한 지역 안에도 다양한 집단이 존재할 수 있음을 무시할 위험성이 있다. ‘전체’라는 가치가 잘못 사용되면 자칫 다양성이 묵살되고, 역사 연구가 주류 집단의 과거로만 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아나폴리스 주에서는 공공 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든 시민이 같은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지역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집단을 전부 무시하고 단 하나의 역사를 들이미는 것으로써, 이 과정에서 흑인과 같은 비주류 집단은 큰 이질감과 단절감을 느끼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한민족’이라는 용어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단절감,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는 문제를 지적받고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삭제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리하자면, 공공 역사에서의 ‘공공’, 즉 대중을 단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단일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보다는 대중을 저마다 각자의 가치관과 역사를 가진 개인의 총합으로 여기는 것이 보다 현대적이며, 민주적인 정의일 것이다. 대중을 단일 집단으로 여기는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대중’들과 교류하는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능력을 해칠 여지가 크다.​공공역사의 역사와 오늘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공공역사란 역사 연구에 점차 대중이 기여하는 바가 커지고 있는 최근의 양상을 일컫는다. 공공역사의 이론과 방법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박물관의 형성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세기를 지나면서, 큐레이터들은 전시품을 그 형태나 장식의 종류와 같은 유형학적 범주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전시품의 사회문화적 맥락애 중점을 두고 분류한 데 비해, 이 같은 새로운 분류법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큐레이터들은 현재의 관객과 과거의 전시품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전시품에 새로운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역사가 대중을 ‘위해’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해당 지역의 역사적 맥락, 즉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역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공공 역사 기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나아가 1960~70년대를 거치면서는 박물관을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기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 ‘박물관의 민주화’ 움직임을 거치며 박물관들은 새로운 역사 교육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바로 역사의 재구성과 재생산 그리고 시청각적 기술과의 접목이다. 즉, 역사를 덜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같은 시기에 주목할 만한 사회적 움직임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사회사, 여성사 그리고 흑인 역사의 등장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집단과 주체들의 다양성을 역사에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사회사학자들과 급진적 역사가들은 역사학의 학문적 엘리트주의를 타파하고 아래에서 위로의 역사학, 즉 상향식 역사학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접근법의 확산에는 당시 있었던 계급 갈등이나 인종 분리 등의 갈등도 기여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역사학에는 새로운 관점의 지평이 열렸는데, 역사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만큼이나 대중의 관점과 인식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즉 전후 1950~70년대를 통틀어 일어난 역사학계의 학문적 변화를 일컬어 오늘날 ‘공공역사’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1980년대를 지나며 미국, 호주, 캐나다를 중심으로 공공역사는 더욱 확산되었다. 미국 여러 지역의 대학에서는 지역민들이 지역사를 이해하고 공동체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공공역사는 역사학의 유의미한 하위 분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다수의 공공 연구 프로젝트는 민간이 아닌 역사 전문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보였다. 오늘날 다양한 국가들은 제각기 고유의 방식으로 공공역사의 지평을 넓히고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래서, ‘공공역사’에 대해 모든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역사를 거쳐 발전해 온 공공역사는 역사와 현재와의 관계성,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공공역사의 ‘미래’는 다소 불투명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된다. 공공역사학이 아직까지 개념적으로 굳게 정의되지 못한 탓에, 자칫하다가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학문 분야로서의 전문성을 둘 다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그 근거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공공역사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내림과 동시에 공공역사가들의 역할을 역사 연구의 전문적 분야 중 하나로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공공역사를 반(反)역사기관적으로 여기는 전통적 견해에서 벗어나 역사 연구의 전문적 분야 안에 공공역사의 위치를 명확하게 확립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공공역사가들에 의해 개발된 역사연구 방법들은 역사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 간의 장벽을 허물고, 역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임과 동시에 역사가 사회와 더 폭넓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제는 역사의 생산과 소비에 비전문가들, 즉 대중이 직접 개입한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통한 역사의 재구성 및 생산과 소비를 하나의 예시로 들 수 있다. 이 같은 활동의 결과 오늘날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주요 동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