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부터 우리집은 난장판이 되었답니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직장에서 휴가를 낸

엄마와 함께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딸 두루의 짐을 사모아 서 싸는 일이었지요.

결혼한 이후로 그동안 그렇게도 많은 곳을 떠돌아 다니느라 이삿짐 싸는 것에는

이제 이력이 날 만큼 한데도...어찌 그리 낯설고 힘든지...



꼭 무슨 일이 날 것 같아서인지 나도 조용조용히 식구들에게 잔소리 조차 내지 않으려

애썻고, 다들 말하지 않아도 뭔가 긴장해서 인지 식욕부진에 배탈(?)을 호소하고, 당사자인

딸은 결국은 속쓰림에 거의 안절부절 하였답니다.



그런 과정 끝에 장거리 주행에 대비해 여기저기 점검을 마친 우리집 애마인 포드 밴에

바리바리 쌓인 짐을 전날 저녁에 실어놓고 자기로 했답니다.



마침내 2008년 8월 31일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전날 저녁 일찍 잠을 청하였으나,

새벽 2시경 눈이 떠지고 그냥 침대에서 마냥 뒤척이다 4시부터 씻고 드디어 출발하였는데,

출발 순간부터 엄청난 안개가 도로에 깔려있더군요. 캄캄한 새벽 고속도로에 오고가는

차량이라곤 없는 가운데 한치 앞도 안보이고 너무나 힘들었답니다. 거기다 뭔일인지

운전하는 내 뱃속은 자꾸 뒤틀고...캐나다에는 고속도로에 휴게소도 없는데...

나들목을 나가도 새벽이라 영업하는 주유소도 편의점도 없는데...

결국 ...



그렇게 한시간을 안개속에서 운전을 한 뒤 날이 밝아오는 곳에서 아내와 운전교대를 하고

잠을 청하고 나니, 이게 뭔일 ???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아내는 초긴장 상태로 대략 200키로

지점을 통과하는 도중이더군요. 마침 노바스코샤주의 유일한 톨게이트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또 다시 운전교대를 하여 목적지인 핼리팩스로 향하였답니다.



밴인 포드 윈드스타 차량의 중간 좌석을 떼내어서 넓직한 뒷좌석에서 곤히 잠든 딸과

아들, 그리고 폭우속에 운전하다 지친 아내는 조수석에서 푸욱 잠들어있더군요.

이윽고 목적지 바로 직전의 출구 옆 빈터에서 전날 저녁에 아들이 혼자서 싸놓은

김밥을 맛있게 먹고 다들 제 정신을 차려서, 다시 대학에 도착하였습니다.



많은 수의 신입생들이 한꺼번에 온갖 차량에 짐을 싣고 와서 내리고, 기숙사로 옮기는

바람에 도로를 학교직원들이 통제하고 ... 그러면서도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소란없이

일이 마무리 되는지 탄복할 지경이더군요. 우리나라 같으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텐데...



또 한가지 이곳의 학생 기숙사는 침대와 간단한 책꽂이겸 책상, 그리고 옷장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가져오는 짐이 기본적으로 작은 냉장고, 전자레인지, 오디오 등등 엄청난

이삿짐을 싸오더군요.  대강 가져온 짐을 몇차례에 걸쳐 차에서 4층 다락방 같이 생긴

배정받은 방으로 옮겨놓고 더 필요한 물건을 월마트와 코스트코에서

사기로 하고 학교를 나서 시외곽 쇼핑단지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수납할 프라스틱

정리상자만 사오고 나머지는 나중에 필요하면 조달하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햄버거 가게에 갔는데, 또 다시 시작되는 폭우...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마지막 물건 정리를 마치고, 대학캠퍼스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지만

정보를 찾기위해 도서관 건물로 같이 가서 보고 거기서 헤어지기로 하였는데...

아내는 못내 아쉬운지 우무쭈물 거리고... 아직은 다른 친구들이 없어서 딸은 동생을

데리고 도서관 건물에서 자원봉사 학생을 만나서 몇가지 물건을 챙겨들고 돌아 다니다

돌아와서 주차장에 세워진 차속으로 쏙 들어왔는데, 좀 뒤에 다시 따라온 자원봉사 학생이

국제학생들이 투어를 시작하는데 같이 하겠느냐는 질문에 "I do" 한마디를 아주 밝은

얼굴로 외치면서 낼름 차를 내리고는 "엄마 잘가" 해버린다.



아내는 약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당황하다가 이내 딸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헤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긴듯 돌아가자고 한다. 마침 아들은 돌아가는 길에 쇼핑센터에 들러서

구경이라도 하자고 하고...음 아들은 역시 제 잇속을 챙기려는 목적이...

못이기는 척하면서 낯설은 도로를 돌고 돌아서 쇼핑센터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집으로 향하였다.



내가 야간 운전을 하기 위해 밝은 저녁에 먼저 운전대를 맏기기 하고 뒷좌석으로 옮긴 후

잠을 청하였는데, 또 다시 눈을 떠보니 아뿔싸 조금 소강 상태이던 비가 폭우로 바뀌어서

한시간동안 겨우 70 킬로미터 정도를 와서 톨게이트에 도착하더군요. 어쩔수 없이

또 잠시 휴식하고 ...간단히 차안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남은 김밥과 함께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이후로는 오고가는 차가 적어서 야간 운전길에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어찌된 일로

아내가 운전만 하게되면 폭우가 쏟아졌는지...지금도 무척 궁금하더군요.



NB 주 Quispamsis 집에서 NS 주 Halifax에 있는 Dal Housie 대학교 까지 거리는 405킬로미터,

시내에서 몇차례 오고간 거리가 100킬로미터, 다시 돌아가는 길이 ...모두 900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행했습니다.



오자마자 쓰러져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아이소식이 궁금해 인터넷에 접속하니 곧이어 메신저로

"아빠빠빠바바ㅂㅂ..." 호들갑을 떨면서 불러주는 딸이 너무나 이뻣답니다. 아직 방에 있는

직통전화가 연결이 안되어 전화보다는 MSN 화상대화를 하는데 더 좋군요.



딸이 그래도 캐나다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왕복 800킬로미터) 학교를 가게되어

가끔씩은 차로 찾아가겠지만, 혼자서 씩씩하게 열심히 세상살이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중학교 졸업 무렵에 캐나다에 와서 4년만에 전학년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을 들어가다니...

앞으로 목표가 꼭 이루어 지기를 빌고 또 빌어야 겠지요.



위의 사진은 두루 기숙사 방에서 바라본 건너편 쪽입니다. 대칭형이니까 앞쪽의 지붕밑 다락방 처럼

창문이 달려있는 곳이랍니다. 다른 사진은 폭우가 내리는 기숙사 앞 도로 쪽이구요.